영화 <올파의 딸들(Four Daughters)> 리뷰 – 고백, 재연, 그리고 기억의 정치학

2025년 4월 2일 개봉한 프랑스 다큐멘터리 <올파의 딸들(Four Daughters)>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문법을 과감히 해체한 작품이다. 튀니지 여성 올파와 그녀의 네 딸, 그중 두 명이 급진 이슬람단체 IS에 가담했다는 사건을 중심으로, 영화는 이 비극을 단순한 사실 보도가 아니라 하나의 '기억 수행'으로 재구성한다.
감독 카우타르 벤 하니야는 실제 인물들과 함께, 그들을 연기할 배우들을 같은 공간에 앉히고, 과거의 사건을 복원해간다. 이 독특한 구성은 인터뷰와 재연, 침묵과 독백이 교차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기억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극영화의 감정과 다큐멘터리의 현실성이 맞닿을 때, 이 영화는 비로소 ‘감정의 진실’에 도달한다.
카우타르 벤 하니야(Kaouther Ben Hania)는 튀니지 출신의 감독으로, 《The Man Who Sold His Skin》으로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중동권 여성 감독 중 주목받는 인물이다. 사회적 억압, 여성의 위치, 종교와 정치가 교차하는 아랍 세계의 현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온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 다큐와 픽션의 경계를 허무는 과감한 형식 실험에 도전한다.
벤 하니야 감독은 “재현은 단지 연기가 아닌,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이 영화 속 재연을 ‘고통을 마주보는 행위’로 설계했다. 올파와 세 딸, 그리고 그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동일한 공간에서 서로의 상처를 비추며 오가는 장면들은 극적이면서도 진실되다. 그녀의 연출은 단순한 연민을 넘어서, 관객으로 하여금 ‘우리가 기억하는 방식’ 자체를 반성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IS라는 국제적 테러조직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가정’이라는 내밀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억압의 대물림을 더 깊게 조명한다. 올파는 아이들을 지키고 싶었지만, 그녀의 방식은 때로 통제가 되고 폭력이 되었으며, 결국 두 딸을 잃는다. 남겨진 가족이 그 상처를 어떻게 마주하는가는, 이 영화가 가장 집요하게 파고드는 질문이다.
올파 역을 연기한 배우 힌 사브리(Hend Sabri)는 중동 영화계에서 활동해온 베테랑으로, 진짜 올파의 감정선을 깊이 있게 체화하며 ‘누군가를 연기한다는 것’의 윤리적 무게까지 고스란히 품어낸다. 배우이자 실존 인물이 서로 마주보며 자신과 타인을 해석해가는 장면은 그 자체로 이 영화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극중에서 딸들을 연기하는 배우들 또한 각자의 상처와 감정을 투영해가며, 영화는 연기와 진실의 경계를 지워버린다.
튀니지는 ‘아랍의 봄’ 이후 민주주의와 혼란, 종교와 세속주의가 충돌한 사회적 배경을 갖는다. 올파의 딸들은 그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이 어떤 선택지를 강요받는지, 그리고 종교 극단주의가 일상에 어떤 균열을 낼 수 있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영화는 정치적 메시지를 직접 드러내지 않지만, 침묵과 응시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구조적 방관’을 폭로한다.
이 영화는 76회 칸영화제 골든아이상, 2024 세자르 다큐멘터리상 등 유수의 영화제를 휩쓸며 전 세계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특히 ‘극화된 다큐’라는 새로운 형식과, 감정에 대한 절제된 미학은 다큐멘터리의 진화된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보는 내내 숨을 멈춘 채 앉아 있었다. 이건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상처를 꿰매는 과정이었다.”
“연기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다. 마음이 무너졌다.”
“누군가를 잃었다는 건, 한 사람의 과거와 미래,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 거라는 걸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