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 <유령>, 암흑 속에서 정보를 주고받던 이름 없는 저항

이해영 감독의 <유령>(2023)은 1933년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첩보전을 벌이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스펜스 스릴러다. 실존 조직인 ‘조선의용대’의 활동을 모티브로 하여, 일제 고등경찰과 정보전 속에서 ‘유령’으로 불리던 정보원이 누구인지 추적하는 심리극을 그려낸다. 이하늬, 설경구, 박소담, 서현우, 이해영 등 출중한 배우들의 연기력과 긴장감 넘치는 연출이 어우러져 주목을 받았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은 무장투쟁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유령>은 총 대신 정보를 무기로 싸운 이들, 정보 조직의 암투와 심리전을 다루며 조명받지 못한 독립운동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현재의 불투명한 사회 구조 속에서도 침묵과 감시를 뚫고 진실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영화를 통해 다시 떠올릴 수 있다.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 내에 침투한 항일 스파이 ‘유령’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일본 경찰은 다섯 명의 용의자를 외딴 호텔에 감금한다. 그들 사이에는 서로를 의심하고 배신하며 진실을 감추는 자와 파헤치려는 자가 교차하고, 점점 긴장감은 고조된다. 유령은 누구이며,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있었는가? 영화는 제한된 공간과 인물 속에서 벌어지는 심리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유령>의 배경인 1930년대는 일제의 압제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였다. 실존했던 ‘조선의용대’는 중국 상하이에서 창설된 항일 무장 조직으로, 무장투쟁뿐만 아니라 정보전에도 탁월한 활동을 펼쳤다. 영화는 이를 바탕으로 경성에 침투한 항일 스파이의 이야기를 픽션 형식으로 구성했으며, 당시 일제 경찰의 잔혹한 감시 체계와 심문 시스템 또한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하되, 인물과 전개는 허구적인 요소로 구성된다. ‘유령’이라는 존재 자체가 실존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정보전에 참여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상징적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또한, 호텔을 배경으로 한 제한된 공간 설정은 영화적 장치를 위한 구성으로, 극적 긴장과 몰입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선택이다.
<유령>은 개봉 당시 “한국형 스파이 스릴러의 완성도 있는 시도”라는 평을 받았다. 이하늬와 박소담, 설경구의 연기는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었고, 특히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심리전과 반전은 흥미롭다는 반응이 많았다. 다만 일부 관객은 “전개가 느리고 인물 간의 서사 연결이 약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해영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저항, 그리고 신념을 가진 개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압제에 맞섰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무기를 들지 않았지만, 정보라는 무형의 자산을 통해 저항했고, 이는 독립운동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감독은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헌사”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정보전은 독립운동의 또 다른 전장이었다. 영화 <유령>은 물리적 전투 이면에 존재했던 심리적 저항과 정보 암투를 드러냄으로써, 독립운동의 다양성과 입체성을 재조명한다. ‘유령’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그 시대 모든 이름 없는 저항의 상징이며, 오늘날에도 감시와 침묵을 넘어 진실을 알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