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 <암살>, 허구와 진실 사이에서 독립운동을 다시 묻다

2015년 최동훈 감독이 연출한 영화 <암살>은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조선을 배경으로, 조선주둔 일본군 사령관과 친일파를 암살하려는 임무를 맡은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대작이다.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등 화려한 배우진과 긴박감 넘치는 전개, 그리고 무장 독립운동이라는 다소 낯선 서사를 상업영화의 문법으로 풀어내면서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동시에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암살>은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듯 개봉했고, 1,27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다. 그 안에는 독립운동의 윤리, 민족 반역자에 대한 단죄, 그리고 민중의 기억에서 사라진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금 우리가 이 영화를 다시 보는 이유는, 독립운동을 둘러싼 서사를 새롭게 구성하는 시도이자, 역사적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꺼내기 위함이다.
1933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조선주둔 일본군 사령관 카와구치와 조선인 친일파 강인국을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이 임무는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폭파 전문가 황덕삼(최덕문), 작전 지휘자 속사포(조진웅)에게 맡겨진다. 한편, 임시정부 내부에 숨어 있던 밀정 염석진(이정재)은 이 작전을 일본 측에 밀고하며 암살 작전은 위기를 맞는다. 서로를 속이고 의심하는 가운데, 안옥윤은 임무를 넘어선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김구, 김원봉, 의열단, 임시정부 등 실존 조직과 인물을 암시하는 서사를 배경으로 한다. 특히 영화 속 친일파 강인국은 일제강점기 경성 부호였던 친일파 송병준을 모델로 했다는 해석이 많다. 또한 영화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독립운동가 김상옥·나석주 등의 폭탄 투척 활동과 저격 시도는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 염석진과 같은 인물은 임시정부 내부의 갈등과 밀정을 상징하는 창작된 복합 인물이다. 즉, 영화는 실제 인물과 사건을 뼈대로 하되, 허구적 드라마를 덧입힌 ‘역사 기반 픽션’이다.
<암살>의 가장 큰 특징은 ‘역사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완전한 창작이다. 등장 인물 중 다수는 가상의 캐릭터이며, 사건 전개 역시 실존 사건과는 구체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가 그려낸 분위기와 정서는 1930년대 무장 독립운동의 일면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의열단과 한인 애국단은 실제로 일본 고관과 친일 인사를 타깃으로 한 저격·폭파를 시도했으며, 임시정부 내부의 간첩 침투와 정보 누설도 역사적 사실이다. 이처럼 영화는 ‘사건의 정확성’보다는 ‘시대의 감정’을 복원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개봉 당시 <암살>은 “상업성과 역사성이 모두 살아있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지현의 액션 연기, 이정재의 내면 연기, 하정우의 유머와 무게감 있는 균형 등이 조화를 이루었다는 찬사가 많았다. 일부 언론에서는 “역사적 허구가 너무 많아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관객들은 “역사를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는 신선함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후 이 영화는 교과서 밖의 독립운동을 대중적으로 회자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최동훈 감독은 “우리는 누구를 기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영화는 거창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복잡한 사연과 실수를 안고 살아간 인물들이 역사의 주체였음을 강조한다. 암살이라는 극단적 행위는 단죄를 넘어, 민족 내부의 배신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라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최 감독은 이를 통해 “독립운동의 기억을 새롭게 이야기하는 방식”을 시도한 것이다.
영화 <암살>은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어둠을 상업 영화로 풀어내면서,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기억의 선택성’을 환기시킨다. 우리는 누군가를 기념하고 누군가는 잊는 방식으로 역사를 소비해왔다. 이 영화는 그 경계를 흔들며, 독립운동가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현재에 문제를 제기한다. 허구 속 인물들을 통해 드러나는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기억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