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 리뷰 – 침묵이 끝나는 순간, 여성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2024년 개봉한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제주 4·3 사건의 억울한 여성 생존자 다섯 명의 목소리를 담은 김경만 감독의 다큐멘터리다. 침묵을 꿰뚫는 이 증언들은 피해자의 자리에서 증언자의 자리로 이동하며, 한국 다큐멘터리의 윤리적 지평을 넓힌다.
양농옥, 박순석, 박춘옥, 김묘생, 송순희는 1948년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억울하게 수감되었고, 수십 년간 고통의 기억 속에서 침묵해왔다. 영화는 이들이 70여 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는 과정까지 담아낸다.
감독은 인터뷰 장면을 넘어서, 생존자들이 직접 형무소 자리를 찾아가 증언하는 장면을 배치하며 강한 여운을 남긴다. “말하는 것 자체가 용기인 시대가 있었다”는 그의 말은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기존의 제주 4·3 영화들과 뚜렷이 다르다. 국가 폭력의 구조보다는 그 안에서 살아남은 여성 개인의 시선에 집중하며, 피해자의 성별과 삶의 층위를 정면에서 다룬다. 이를 통해 “말해지지 않은 고통”의 진실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감옥의 복도, 돌담길, 흐릿한 유년의 기억이 교차하며, 인터뷰는 단지 정보 전달이 아니라 감정의 발화로 기능한다. 여성 생존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엔딩 장면은 단연 압권이며, 침묵하던 존재가 역사의 주어로 바뀌는 순간이다.
관객들은 “내 어머니 세대의 이야기 같다”, “숨죽이고 봤다”는 반응을 보이며 깊이 공감했다. 정재은 감독은 “이 영화는 역사의 사각지대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귀중한 작업”이라 평했으며, 씨네21은 “역사가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만드는 아카이브”라며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해외에서는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청되었으며,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는 ‘용감한 기러기상’을 수상하며 다큐멘터리로서의 미학과 윤리를 동시에 인정받았다.
이 작품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역사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영화를 보고 토론함으로써, ‘말해지지 않은 역사’에 대한 감수성을 기를 수 있다. 이는 제주 4·3을 단지 지역사로 한정하지 않고, 전국적 공감의 장으로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디지털 아카이브와 영상 전시 등 후속 기록 사업도 추진 중이다. 제주4·3도민연대는 “이제 다음 세대가 기억을 이어야 할 때”라며 세대 간 전승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 상영 이후, 생존자 가족들의 반응은 먹먹했다. 어떤 유족은 “어머니는 평생 그 일을 말하지 않으셨지만, 영화 덕분에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족은 “가족이 무엇을 겪었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GV에서 김경만 감독은 “이 영화는 설명이 아니라 기다림의 영화다. 인터뷰가 아닌 증언”이라며, “침묵은 오래되었고, 이제는 그들을 지우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엔딩 크레딧은 음악 없이, 제주의 바람 소리와 함께 생존자들이 자신을 부르는 장면으로 구성된다. 이는 다큐멘터리에서 보기 드문 정서적 마무리이며, 관객에게 이름을 기억해달라는 마지막 요청처럼 들린다.
제주 외 지역 관객들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왜 이제야 이런 역사를 알게 되었을까”, “우리 지역에도 묻혀 있는 고통이 있을지 모른다”는 반응은 <돌들이 말할 때까지>가 단지 지역의 고백을 넘어, 모두의 기억과 책임을 환기시키는 힘을 지녔다는 것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