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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 〈돌들이 말할 때까지〉, 침묵을 꿰뚫는 여성들의 증언

by SharpSummary 2025. 4. 12.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 <돌들이 말할 때까지>, 침묵을 꿰뚫는 여성들의 증언

 

영화 – &lt;돌들이 말할 때까지&gt; poster

 

<돌들이 말할 때까지>(2024)는 김경만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로, 제주 4·3 사건 당시 억울한 수형 생활을 겪은 여성 생존자 다섯 명의 목소리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단지 과거를 회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곡된 역사와 침묵을 꿰뚫는 증언의 자리로서 기능한다. 여성들의 고통은 통계가 아닌 고유한 목소리로 남아야 한다는 이 영화의 방향성은 한국 다큐멘터리의 윤리적 기준을 다시 세운다.

왜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볼까

4·3을 다룬 영화와 기록물은 많지만, 피해자의 성별과 연령을 교차적으로 조명한 작품은 드물다. 특히 여성 수형자들은 전쟁과 무력충돌의 전면에서 가장 먼저 침묵을 강요당한 존재였다. 영화는 그 침묵을 경청하는 데서 출발해, 더는 누구도 잊혀지지 않도록 기록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역사적 ‘피해자’로만 불리던 여성들이, 이제는 자신의 언어로 역사를 말하는 ‘증언자’로 재탄생하는 순간이 담겨 있다.

줄거리 요약

영화는 양농옥, 박순석, 박춘옥, 김묘생, 송순희 등 다섯 명의 여성 생존자가 들려주는 구술 인터뷰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1948년 스무 살 전후의 나이에 가족을 잃고, 이유 없이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거나 ‘방화범’이라는 죄명을 뒤집어쓰고 전주형무소로 이감되어 수형 생활을 해야 했다. 재판조차 없이 억류되었던 그 시절의 기억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또렷하다. 영화는 이들이 2020년대에 와서야 제주4·3도민연대의 도움으로 재심 청구를 통해 ‘무죄’를 선고받는 장면까지 함께 담는다.

역사적 배경

제주 4·3 사건은 해방 이후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던 도민들과 군경 간 충돌, 그리고 미군정의 통제 속에서 발생한 국가폭력이다. 약 3만여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으며, 그 중 30% 이상이 여성, 노인, 어린이 등 비무장 약자였다. 그러나 여성의 피해는 단순한 숫자로 남았고, 실제 목소리는 기록되지 않았다. 이 영화는 바로 그 공백을 채운다. 특히 형무소에 갇힌 여성 수형자들의 삶은 4·3의 또 다른 민낯이다.

제작 배경과 연출 방식

감독 김경만은 5년 넘게 제주4·3도민연대와 함께 여성 생존자의 구술 채록을 진행하며 이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화려한 편집이나 음악 없이도, 제주의 설산과 해안, 돌담과 바람이 자연스레 삽입되어 사건의 감정적 리듬을 조율한다. 특히 영화 제목은 김소연 시인의 시 ‘돌이 말할 때까지’에서 착안한 것으로, 결국 침묵하던 존재들도 언젠가는 발화하게 된다는 믿음을 상징한다.

언론과 관객의 평가

영화는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용감한 기러기상'을 수상했고, 제18회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도 초청되며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씨네21은 “역사가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만드는 아카이브”라며 높은 평점을 주었고, 정재은 감독은 “제주 4·3의 숨겨진 역사를 여성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기록한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관객들은 “조용하지만 강한 영화”,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 같다”는 반응을 보이며 깊은 울림을 공유했다.

감독이 말하고자 한 것

김경만 감독은 "말하는 것 자체가 용기인 시대가 있었다. 그 침묵을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말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연출은 강요하지 않고, 재현하지 않으며, 대상의 목소리를 스스로 드러내도록 유도한다. 다큐멘터리는 그래서 증언 그 자체이고, 역사의 주어를 바꾸는 작업이다. 말하지 않는 돌들이 결국 말하게 되는 순간, 역사는 비로소 정직해진다.

한국 현대사 속 이 사건의 의미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제주 4·3의 비극을 여성 생존자라는 구체적인 시선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록을 넘어선 기억의 복원이다. 이 영화는 말하지 못한 사람들이 다시 역사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피해자였던 이들이 ‘말할 권리’를 가짐으로써 사회는 새로운 정의를 학습하게 된다. 우리가 왜 기억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 영화의 대답은 분명하다. 말해지지 않은 고통이야말로, 가장 먼저 들여다보아야 할 진실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