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 <귀향>, 침묵의 세월을 넘어 집으로 돌아오다

조정래 감독의 영화 <귀향>(2016)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무려 14년 동안 감독이 시나리오를 붙잡고 기다려온 영화로, 제작비 부족으로 좌절될 뻔했지만 수많은 시민의 후원과 참여로 결국 스크린에 올랐다.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한 개인이 겪은 고통과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짓밟혔는지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단순한 피해자 서사를 넘어 기억과 위로, 그리고 진실을 향한 집단의 응답을 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단지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인권 문제다. <귀향>은 강요된 침묵 속에 살아온 여성들의 목소리를 되찾아 주려는 시도이며, 상처받은 이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열어주는 상징적인 영화다. 오늘날에도 왜곡과 부정이 이어지는 이 역사 속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본다는 것은 피해자들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자 기억의 연대다.
1943년, 경상도 주산리의 14세 소녀 정민아는 일본군에게 끌려가 중국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위안소에 감금된 민아는 같은 처지의 또래 소녀들과 함께 끔찍한 현실을 마주하며 하루하루를 견딘다. 영화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의 삶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며 피해의 상처가 얼마나 오랜 세월 지속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의 배경이 된 사건은 실제 '위안부' 피해자인 강일출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한다. 1990년대 들어 피해자들의 공개 증언이 이어졌지만, 오랫동안 한국 사회는 이들을 침묵 속에 가두었다. 공식적인 사과나 법적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많은 피해자들이 세상을 떠났고, 살아남은 분들도 여전히 심리적 고통 속에 살아간다. 이 영화는 그런 현실을 반영하며, 피해자의 시선에서 역사를 바라보게 한다.
<귀향>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지만, 주요 서사는 실제 증언에 기초하고 있다. 민아라는 인물은 여러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압축한 캐릭터이며, 영화에 등장하는 위안소, 일본군의 가혹 행위, 처형 장면 등은 피해자들의 증언과 일치하는 내용이 많다. 다만 일부 장면은 상징적 연출을 통해 감정의 깊이를 극대화하는 영화적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귀향>은 개봉 전부터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으로 완성돼, “국민이 만든 영화”라는 별칭을 얻었다. 개봉 후 35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보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무거웠지만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는 관람 후기가 이어졌다. 언론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문제를 외면했는지를 일깨워준 작품”이라며 호평했지만, “잔혹한 장면의 반복”이라는 일부 비판도 있었다.
조정래 감독은 “이 영화는 분노보다는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관객의 감정을 슬픔, 공감, 연대로 이끌어가려 노력했고, 그 중심에는 ‘영혼의 귀향’이라는 상징을 두었다. 육체는 되돌아오지 못했을지라도, 그들의 혼이라도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감독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였다.
위안부 문제는 단지 전쟁 범죄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조직적 폭력이자 식민지 지배의 잔혹한 민낯이다. <귀향>은 이 문제를 정치적 논쟁이 아닌 인간의 고통과 기억의 문제로 환기시킨다. 영화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침묵했는지를 돌아보게 하며, 기억의 윤리를 묻는다. 이제는 피해자들이 겪은 아픔을 함께 기억하고 기록함으로써, 이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지켜야 할 때다.